
윌리엄 크리스티
1944년 12월 19일 - 버펄로(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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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쳄발로 연주자, 지휘자, 음악학자이자 교육자인 윌리엄 크리스티는 지난 25년간 가장 흥미로운 음악적 모험 가운데 하나를 이끈 영감의 원천이다. 그의 선구적인 활동은 프랑스에서 바로크 음악, 특히 그가 매우 폭넓은 청중에게 소개한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 레퍼토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뉴욕주 버펄로에서 태어난 윌리엄 크리스티는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71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 그의 경력에서 중대한 전환점은 1979년 레자르 플로리상을 창단하면서 찾아왔다. 이 성악·기악 앙상블의 음악감독으로서 크리스티는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 모두에서, 대체로 등한시되거나 잊혀졌던 레퍼토리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음악가이자 연극인으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1987년 파리의 Opéra Comique에서 선보인 륄리의 아티스 공연은 대중의 큰 인정을 받았으며, 이후 국제 순회공연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바로크에 대한 윌리엄 크리스티의 열정은 한 번도 식지 않았다. 샤르팡티에에서 라모에 이르기까지, 쿠프랭, 몽동빌, 캉프라, 몽테클레르를 거치며 그는 서정 비극과 오페라-발레의 공인된 거장이 되었고, 프랑스 모테트와 궁정 음악에도 똑같이 능통하다. 프랑스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은 다른 유럽 레퍼토리를 탐구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았으며, 몬테베르디, 로시, 스카를라티 등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작품으로도 수많은 호평받는 공연을 선보였다. 그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연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퍼셀과 헨델의 작품도 즐겨 다룬다.
그는 70장이 넘는 음반을 녹음했으며, 2002년부터는 버진 클래식을 위해서만 녹음하고 있다. 캉프라와 쿠프랭의 모테트, 헨델의 바이올린 소나타, 안네 소피 폰 오터와 함께한 세르세 실황 녹음, 엑상프로방스에서 공연된 몬테베르디의 귀향한 율리시스 DVD, 샤르팡티에의 테 데움과 솔로몬의 재판에 이어, 최근에는 퍼셀의 신성한 찬가와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발매했다.
객원 지휘자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윌리엄 크리스티는 글라인드본을 비롯한 권위 있는 오페라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초청받는다. 글라인드본에서는 계몽시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헨델의 테오도라와 로델린다를 공연했으며(후자는 2002년 1월 Théâtre du Châtelet에서 재공연되었다). 그 밖에도 취리히 오페라에서 글루크의 타우리데의 이피게니, 라모의 화려한 인도, 헨델의 라다미스토와 오를란도를 지휘했으며, 리옹 국립 오페라에서는 2005년 코지 판 투테에 이어 2007년 6월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할 예정이다. 2002년부터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객원 지휘자로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윌리엄 크리스티는 젊은 예술가들의 교육과 전문적 성장에도 깊이 헌신해 왔으며, 지난 25년 동안 여러 세대의 성악가와 기악 연주자들을 길러냈다. 실제로 오늘날 바로크 앙상블의 음악감독 가운데 다수는 레자르 플로리상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 크리스티는 파리 음악원에서 고음악 클래스를 맡은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거나 엑상프로방스와 앙브로네의 아카데미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이끌도록 자주 초청받는다.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그는 캉에 젊은 성악가들을 위한 아카데미인 ‘르 자르댕 데 부아’를 설립했다. 2002년과 2005년에 열린 첫 두 차례의 세션은 프랑스와 유럽 각지, 그리고 미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윌리엄 크리스티는 1995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이자 예술문학훈장 오피시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