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기간 동안 반 클라이번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는 거의 8분간 이어진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젊은 음악가는 쇼스타코비치, 길렐스, 리히터, 카발레프스키 등 소련 최고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반 클라이번은 “정말 믿을 수 없었어요. 관객보다 심사위원들이 더 무서웠죠. 하지만 긴장이 풀리고 나니 그런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깨달았습니다. 이 위대한 음악의 복잡함 뒤에서 그들로부터 단순함이 뿜어져 나왔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1958년 귀국 후 그는 타임 매거진 표지에 러시아를 정복한 텍사스인으로 등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뉴욕에서 국가 영웅들에게만 허락되는 티커테이프 퍼레이드를 받은 유일한 클래식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루이지애나 출신인 반 클라이번은 세 살 때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였던 아서 프리드하임의 제자였습니다. 클라이번은 이후 킬고어 고등학교에 다니며 1951년에 피아노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12세 때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솔리스트로 데뷔했고, 이후 뉴욕의 명문 줄리어드 음대에서 로지나 레빈느를 사사하며 러시아 낭만파 레퍼토리를 뛰어나게 익혔습니다.
20세 때는 루돌프 서킨, 조지 셀, 레너드 번스타인의 만장일치로 레벤트리트 재단상을 수상했고, 이후 뉴욕 필하모닉과 카네기 홀에서 주목받는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덴버, 클리블랜드, 인디애나폴리스, 피츠버그 등 미국의 명망 높은 교향악단과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RCA 레코드와 함께 키릴 콘드라신과 협업하여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녹음했으며, 이 앨범은 300만 장 이상 판매되어 플래티넘을 기록했습니다. 1960년부터 1972년까지 국제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이후 반 클라이번은 수많은 성공적인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1962년에는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반 클라이번 재단이 주최하는 첫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개최되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 대회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진 피아니스트들에게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발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