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에르 앙리
1927년 12월 9일 — 2017년 7월 5일
소개
피에르 앙리는 전기음향 음악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프랑스 작곡가이다. 그는 일곱 살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으며, 열 살에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펠릭스 파스론에게 피아노와 타악기를 배우고, 나디아 불랑제의 작곡 수업을 들었으며 올리비에 메시앙에게 화성을 공부했다.
1949년 그는 RFT(Radiodiffusion-Télévision Française)에서 피에르 셰페르를 만나, 그와 함께 구체음악 범주에 속하는 최초의 작품인 한 남자를 위한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피아노에 목소리와 숨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입소리, 발걸음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결합한 것이다. 이어 1951년 앙리와 셰페르는 1953년 도나우에싱겐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최초의 “구체 오페라” 오르페를 썼다. 같은 시기 피에르 앙리는 RTF의 구체음악 연구 그룹(GRMC) 작업을 이끌었으며, 마이크로 녹음한 소리에 초점을 둔 그의 음악적 개념은 점차 전자음악을 압도하게 되었다. 피에르 앙리는 자신의 첫 독립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의 음악을 “전기음향” 음악이라 칭했다. 프랑스 최초의 독립 녹음 스튜디오인 APSOME은 “전기음향 음악에서의 소리 응용 과정(Processus Applications SOnores en Musique Electroacoustique)을 뜻한다.
1955년부터 그는 모리스 베자르를 만나 협업을 시작했고, 이는 1967년 CD 전자적 경련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작품은 원래 베자르의 안무 오늘의 시간을 위한 미사 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2년간 클래식 음악 히트 퍼레이드를 석권했다. 모리스 베자르와의 오랜 협업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캐럴린 칼슨, 머스 커닝햄, 조지 발란신, 마기 마랭 등 다른 안무가들 역시 자신들의 작업에 피에르 앙리를 참여시켰다. 또한 그는 1963년부터 1967년까지 거의 전적으로 발레, 영화, 무대 작품, CD를 위해 작곡하면서 자신을 작곡가라기보다 영화감독 또는 조각가로 정의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기 나의 소리 일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음표를 결코 좋아한 적이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특성, 관계, 형태, 행위, 인물, 재료, 단위, 움직임 [...]이다. 음표로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표는 작곡가에게만 쓸모가 있다.
피에르 앙리, 나의 소리 일지 - 서문과 선언, 악트 쉬드, 2004.
1968년 그의 전기음향 실험은 요한의 묵시록의 제작으로 이어졌으며, 이 작품은 테아트르 드 라 뮈지크에서 처음 연주된 뒤 2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진 콘서트가 뒤따랐다. 이는 음악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남았다. 이어 1970년대에 피에르 앙리는 동물의 소리뿐 아니라 다른 음악 작품, 무대 작품, 영화, 작업 중인 작품의 발췌곡까지 포함해 소리의 혼합을 계속 탐구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제10교향곡에서는 독일 작곡가의 아홉 교향곡에서 가져온 일부 발췌곡들을 함께 섞었다.
1980년대에는 다시 라디오 작업을 하며 일련의 라디오 작품을 작곡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전기음향 음악 연구는 중요한 성과에 도달했는데, 특히 문화부와 파리시의 재정 지원을 받은 그의 SON/RE 협회(Sound and Electroacoustic Research)를 통해 그러했다.
프랑스 정부의 위촉으로 그는 1996년 파리 가을 페스티벌이 주최한 콘서트 시리즈 "피에르 앙리의 집에서"를 담은 CD 내부/외부를 녹음했다. 이때 작곡가는 자신의 집 벽에 창작에 사용하는 소리가 담긴 수천 개의 테이프를 걸어, 콘서트를 자신의 작업 공간을 보여 주는 진정한 전시로 탈바꿈시켰다. 이 CD는 대립 IV라는 제목의 리믹스 버전으로도 출시되었다.
이와 비슷하지만 더욱 야심 찬 프로젝트는 "파록시즘"의 세계 초연이다. 이 콘서트는 다시 한번 파리 자택에 있는 작곡가를 매우 독창적인 시각적 창작물들로 둘러싸인 모습으로 보여 준다. 이 행사의 배급은 태즈메이니아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MONA FOMA(MOFO) 2012 – 구·신 미술관(MONA) 음악 및 예술 페스티벌 – 가 이를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한 뒤, medici.tv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웹캐스팅되었다.
피에르 앙리가 경력 동안 받은 수많은 상 가운데에는 "국립 음악 대상"(1985), "SACEM 대상"(1987), "음악의 승리상"(1988), "파리시 대상"(1995), "SACD 대상"(1996)이 있다. 그는 또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Officer of the Legion of Honor), "예술문학훈장 코망되르"(Chief of Arts and Letters), "국가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er of the National Order of Merit) 칭호를 받았다.
그의 모든 작품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