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트리스 셰로
1944년 11월 2일 - 레지녜(멘에루아르) — 2013년 10월 7일 - 파리
© ANTOINE D'AGATA/MAGNUM PHOTOS
소개
화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파트리스 셰로는 당대 가장 상징적인 연출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강렬한 시각성을 지닌 프로덕션은 정치적 참여와 개인적 증언을 결합했다.
파트리스 셰로의 연극 활동
파리의 고등학교 아마추어 연극단에서 활동한 뒤, 파트리스 셰로는 연출과 무대미술에 더욱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1966년 그는 사르트루빌 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68년 5월의 격변 직전, 강한 정치적 참여 의식을 드러냈다.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사르트루빌 극장은 1969년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이후 파트리스 셰로는 조르조 스트렐러가 이끄는 밀라노의 피콜로 테아트로에 합류했으며, 스트렐러는 그의 수련을 완성시켜 주었다. 1971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로제 플랑숑, 로베르 질베르와 공동으로 빌뢰르반 국립민중극장의 감독에 임명되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낭테르의 레자망디에 극장 감독을 맡은 파트리스 셰로는 마리보 등의 고전 레퍼토리와 하이너 뮐러,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등의 전위 작가들이 쓴 신작 희곡을 결합하며 연출에 관한 탐구를 심화했다.
파트리스 셰로의 오페라 프로덕션
197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위한 바그너의 테트랄로지를 연출하며, 파트리스 셰로는 오페라계에 극적으로 등장했다. 니벨룽의 반지의 줄거리를 산업적 맥락에 배치한 그의 프로덕션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시대를 획정했다. 이후 파트리스 셰로는 베르크의 룰루(1979), 모차르트의 루치오 실라(1984), 베르크의 보체크(1992),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1992), 코지 판 투테(2005), 야나체크의 죽은 자들의 집에서(2007),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2007),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2013)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오페라로 돌아왔다.
영화감독 파트리스 셰로
수많은 영화를 연출한 파트리스 셰로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탐구했다. 포스트모던한 정신을 지닌 그의 영화는 자전적 요소와 사회 비판, 정치적 참여를 결합했다. 그가 받은 수많은 상 가운데 상처 입은 남자(1984)로 받은 세자르상 최우수 각본상,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기차를 타고(1999)로 받은 세자르상 최우수 감독상, 왕비 마르고(1994)로 받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친밀함(2001)으로 받은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그의 형제(2003)로 받은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은곰상 등을 꼽을 수 있다.
미학
파트리스 셰로의 창작 활동에는 강한 정치적 참여 의식, 사회 비판, 소외를 낳는 자본주의에 대한 고발이 드러난다. 그러나 수사적 담론과는 거리가 멀게도, 파트리스 셰로의 미학은 시각적 수단과 배우들의 몸짓 및 신체적 표현을 중시한다. 환상성과 신비는 물리적 무대와 해석의 가능한 영역을 확장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앙토냉 아르토, 독일 표현주의, 오슨 웰스에게서 영감을 얻은 파트리스 셰로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풍부하고, 참여적이며, 다채롭고 다학제적인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 그 영향력은 그가 국제 관객으로부터 받은 탁월한 존경을 통해서만 가늠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