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오르간 연주자

올리비에 메시앙

1908년 12월 10일 - 아비뇽 (프랑스) — 1992년 4월 27일 - 클리시-라-가렌 (프랑스)

소개

“도시에 살면서 새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이들에게 새소리를 선물하고, 군악이나 재즈만 아는 이들에게 리듬을 만들며, 색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색을 그려준다.” 올리비에 메시앙 문학과 예술 가문 출신으로서 음악 가문이 아니었던 올리비에 메시앙은 매우 폭넓은 참조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어린 시절이 방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중심을 잡고’ 성장했다. 그의 첫 화성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선물은 그를 음악의 길로 이끌었다. 그의 오페라는 생애 말기에야 나왔지만, 그는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와 오르간, 그리고 가곡과 관현악 작품에서 뛰어났다. 또한 그는 새소리 사용, 젊은 프랑스(Jeune France) 그룹 창립, 그리고 위대하고 열린 마음의 교사로서도 존경받는다. 1919–30: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하며 그 기간 동안 오르간과 작곡에서 1등상과 고등 음악 학위(Diplôme d’études musicales supérieures)를 포함해 많은 상을 수상했다. 1931: 파리의 라 트리니테(La Trinité) 교회의 정식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어 60년 넘게 위대한 카바예-콜(Cavaillé-Coll) 오르간 중 하나를 감독했다. 1935: 그 시기의 가장 큰 작품인 오르간 사이클 주님의 탄생(La Nativité du Seigneur)을 작곡했다. 1935: 메시앙, 이브 보드리에, 앙드레 졸리베, 장-이브 다니엘-르쉬르로 구성된 젊은 프랑스 그룹의 첫 콘서트가 열렸다. 1939–41: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시 군 복무에 소집되어 실레지아(Silesia)의 포로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가장 야심찬 작품인 시간의 끝을 위한 사중주(Quatuor pour la fin du temps)를 작곡했고, 1940–41년 겨울에 자신과 다른 세 명의 전쟁 포로가 초연했다. 1941: 파리 음악원에서 화성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52–53: 조류학자 자크 델라맹(Jacques Delamain)과 함께 공부하며 프랑스 시골에서 집중적으로 새소리 연구를 시작했다. 10월에 새들의 각성(Réveil des oiseaux) 초연. 1962: 대규모 관현악을 위한 크로노크로미(Chronochromie) 초연, 새소리 시기의 정점; 일본으로 여행하여 공연과 새소리 수집. 1966: 파리 음악원 작곡 교수로 임명; 프랑스 학술원 미술 아카데미(Académie des Beaux-Arts de l’Institut de France) 회원으로 선출. 1975–83: 오페라 성 프랑수아 다시즈(Saint François d’Assise) 작곡, 1983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 1978: 파리 음악원에서 은퇴. 1984: 마지막 오르간 작품 성체의 책(Livre du Saint Sacrement). 1988: 교황 바오로 6세 국제상 수상; 공연과 새소리 수집을 위해 호주 방문; 건강 악화 시작. 1988–92: 뉴욕 필하모닉의 의뢰로 마지막 주요 작품 저 너머의 번개(Éclairs sur l’Au-delà…)를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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