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플리세츠카야의 사진
댄서

마야 플리세츠카야

1925년 11월 20일 - 모스크바 — 2015년 5월 2일 - 독일 뮌헨

소개

뛰어난 테크닉, 유연하고 우아한 신체에서 비롯된 탁월한 극적 감각, 섬세함과 가벼운 도약은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20세기 발레 예술을 빛낸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볼쇼이 극장의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이자 비할 데 없는 무용수, 발레 마스터, 안무가였던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옛 소련을 대표한 가장 위대한 스타 중 한 명이자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20세기 발레의 전설이었다. 열한 살의 나이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볼쇼이 극장 무대에 데뷔한 이래, 모리스 베자르가 그녀에게 헌정한 발레 아베 마야에서 70세의 나이로 발레리나로서 마지막 공연을 하기까지,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비범한 경력을 쌓았다.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극도로 긴박한 상황 속에서 1925년에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야 했다. 아버지는 1938년 스탈린 치하에서 처형되었고, ‘인민의 적’으로 여겨진 어머니는 여러 해 동안 추방되었다. 그녀는 볼쇼이 극장의 공인 발레 마스터였던 삼촌 아사프 메세레르의 보살핌 아래 처음으로 무용을 배웠다. 1934년 입학한 볼쇼이 발레 학교에서 파벨 게르트와 마리아 레온티예바에게 사사했으며, 1945년 모스크바 안무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하여 1990년까지 활동했다.

1943년 레 실피드로 데뷔한 뒤 그녀가 맡은 가장 중요한 배역으로는 호두까기 인형의 마샤, 지젤의 미르타, 1945년 글라주노프의 동명 발레에 등장하는 라이몬다, 1947년부터 연기하여 전 세계에서 800회 이상 공연하며 큰 찬사를 받은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오딜, 바흐치사라이의 샘의 자레마, 차부키아니의 라우렌시아 주역,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의 프리기아, 그리고 직접 안무하고 주역을 맡은 안나 카레니나 등이 있다.

1960년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볼쇼이 극장의 스타로 임명되었고, 이어 1962년에는 일반적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무용수에게만 수여되는 드문 칭호인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가 되었다. 볼쇼이 극장에서 그녀가 뒤를 이은 갈리나 울라노바와 함께, 두 사람은 이 명예 칭호를 받은 유일한 소련 무용수였다. 그녀는 현대 발레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으며, 특히 롤랑 프티와 모리스 베자르의 안무를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냉전 시기, 마침내 소련을 떠나는 것이 허가되자 볼쇼이 발레단과 함께한 해외 순회공연은 그녀를 세계적인 명성으로 이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 정부는 그녀를 해외 문화 대사로 활용했지만, 소련 내에서 그녀는 ‘인민의 적의 딸’이라는 평판 때문에 정부의 지속적인 탄압에 맞서야 했다.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높은 기술적 수준과 빛나는 극적 예술성에 걸맞은 놀라운 유산을 발레에 남겼다. 그녀는 전 세계 무용수와 안무가들의 이상으로 남아 있으며, 모리스 베자르 자신도 그녀를 “춤의 마지막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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