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발레 마스터로
마드리드에서 3년을 보낸 후, 페티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라는 초청을 받았고, 원래 1년 예정이었던 체류는 사실상 평생 머무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제국 극장에서 그는 수석 무용수에서 공식 안무가로 승진했으며, 1862년 첫 성공작인 파라오의 딸을 선보였습니다.
황제 자신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후, 페티파는 제국 발레의 모든 극장에서 작업을 시작했고 1855년부터 1887년까지 제국 발레 학교를 지휘했습니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에는 가장 사랑받는 작품들인 돈 키호테(1869)와 라 바야데르(1877)이 포함됩니다.
차이콥스키, 예술적 만남
페티파와 차이콥스키의 첫 만남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린 라 바야데르 공연에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페티파가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할 때, 그는 차이콥스키가 앉아 있던 박스석을 향해 “가장 중요한 러시아 작곡가가 우리 극장을 위해 작곡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외쳤습니다. 이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 호두까기 인형(1892), 그리고 백조의 호수(1895)이 이어지는 매우 생산적인 예술적 협업의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페티파의 아카데믹 발레
페티파의 발레는 내러티브가 중심이며, 전설과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경우가 많고 극적인 부분과 화려한 기교가 조화를 이룹니다. 그는 낭만주의 발레의 우아함과 몽상뿐만 아니라 슬라브적 운명론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그의 발레는 출연진 전체에 의존하는 완전한 스펙터클로, 일부 캐릭터는 거의 또는 전혀 춤추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 인사와 미래를 향해
60편이 넘는 작품의 저자인 페티파는 1904년에 무대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는 흑해 연안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그가 가르친 이들과 그의 영감을 주는 작품들을 통해 놀라운 유산을 남겼습니다. 흔히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 예를 들어 그의 사후 파리 무대를 장악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와 수십 년 후 루돌프 누레예프 같은 인물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