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솔티의 경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거의 25년 동안 그는 오페라 지휘에 전념했다.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뮌헨 오페라의 수석 음악 감독을, 1952년부터 1961년까지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음악 감독으로 재직한 동안 코벤트 가든은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1951년에는 잘츠부르크에서 처음으로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를 지휘했다. 1950년대 말에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등 첫 녹음을 했다. 1961년에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오케스트라 경영진이 그에게 묻지 않고 조수(그 조수는 바로 주빈 메타였다)를 임명하는 바람에 거의 이 직책에서 일하지 않았다.
1969년 조지 솔티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감독을 맡으며 관현악 음악 지휘자로서 두 번째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91년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감독을 겸임했다. 1973년 롤프 리버만은 그를 파리 오페라의 음악 고문으로 임명했다. 1979년부터 1983년까지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감독을 역임했다. 1983년에는 리하르트 바그너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바이로이트에서 니벨룽의 반지를 지휘했으나 평소의 높은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는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후기 낭만주의 레퍼토리와 현대 헝가리 음악(벨라 바르톡, 코다이)에서 뛰어나다. 1992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물러난 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을 맡아 1994년까지 재직했다. 1995년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제를 대체한 페스티벌의 예술 고문을 맡았다.
조지 솔티는 길버트 에이미의 D'un espace deployé(1973), 보리스 블라허의 레퀴엠(1959)과 관현악을 위한 콜라주(1968), 데이비드 델 트레디치의 파이널 앨리스(1976),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의 필라델피아 심포니(1961), 한스 베르너 헨체의 헬리오가발루스 황제(1972), 롤프 리버만의 여성 학교(두 번째 버전)(1957), 비톨트 루토슬라프스키의 교향곡 3번(1983), 조지 로치버그의 교향곡 5번(1986), 이아니스 크세나키스의 노오메나(1976) 등 다수의 초연을 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