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츠 리스트
1811년 10월 22일 - 레이딩 (헝가리) — 1886년 7월 31일 - 바이로이트 (독일)
소개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멋쟁이, 지식인 그리고 종교적 아버지였던 리스트는 19세기 유럽을 매료시켰다. 신동으로서 그는 비엔나에서 체르니와 살리에리에게 배웠다. 이미 15세에 유명해진 그는 피아노 기법에 혁명을 일으켰고, 자신의 오페라 편곡, 순례의 해 또는 헝가리 광시곡을 연주하며 전 세계를 돌며 피아노 독주 리사이틀을 확립했다. 1830년 이전에 독일, 스위스, 영국,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이 리스트를 알고 존경했다.
작곡가로서 그는 새로운 길을 열었고, 자신의 말에 따르면 “미래의 무한한 공간에 창을 던지려” 했다. 현대적이고 혁명적인 음악 모험가인 그는 자신의 수많은 여행을 민속 음악이나 동시대인의 발견과 함께 작품에 통합했다. 디지털 초월과 영적 결핍 사이에서 리스트의 작품은 그의 관대함을 반영한다.
1848년부터 10년 동안 그는 바이마르에서 예배당 지휘자로 일하며 바그너, 베를리오즈, 생상스 같은 현대 작곡가들을 끊임없이 홍보하고 그들의 작품 초연을 맡았다. 열정적이고 복잡한 사랑 생활을 거친 후, 1865년 그는 로마로 은퇴하여 프란체스코 수도사들로부터 삭발을 받았다. 무대의 열기, 낭만적 정복, 그리고 수많은 여행을 거쳐 이 야생 집시가 신비로운 아버지가 되었다. 그의 광시곡과 패러프레이즈는 회색 구름이나 음울한 곤돌라로 변모되었다.
1870년대 이후, 장식 없는 완전한 추구는 조성의 상실과 분리, 주제 소재의 고갈, 금욕적 엄격함으로 특징지어졌다. 미래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해 리스트는 모든 다른 가능성을 닫았다. 그의 음악은 단편화되었으며, 조성 없는 바가텔이나 비아 크루시스는 그가 죽음 너머의 새로운 지평에 더 가까워지길 바랐던 마지막 음악적 한숨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