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피아니스트
오르간 연주자

세자르 프랑크

1822년 12월 10일 - 리에주 (벨기에) — 1890년 11월 8일 - 파리 (프랑스)

소개

그의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인 “프랑크 아버지”는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게르만의 안개가 그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경력은 프랑스에서 이루어졌으며,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로, 그 다음에는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다. 프랑크는 이미 리에주 음악원을 마치고 피아노 콘서트 투어를 시작한 열한 살의 비르투오소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833년에 파리에 도착하여 레이샤(Reicha)와 함께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오르간과 작곡은 곧 피아노를 능가했으며, 이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을 계속하기를 바랐던 그의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1858년에 생트-클로틸드 예배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된 프랑크는 위대한 카바예-콜(Cavaillé-Coll) 오르간을 개관했다. 1872년부터 그는 음악원에서 오르간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옛 거장들에 대한 그의 지식, 타고난 형식 개념 감각, 그리고 그의 친절함은 뒤파르크(Duparc), 르쿠(Lekeu), 쇼송(Chausson), 로파르츠(Ropartz), 피에르네(Pierne), 비에른(Vierne), 투르네미르(Tournemire) 등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낭만주의 시대 파리에서 프랑크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오르간, 제자들, 그리고 작곡 사이에서 나누어 살았다.

생전에 전혀 인정받지 못했지만, 프랑크는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비교할 수 없는 형식 감각으로 반복되는 주제를 확대하며, 그의 영감을 받은 관현악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그의 오르간 작품들은 여전히 기준이 되고 있지만, 실내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과거의 만연함과 낭만주의적 주제 영감 사이에서, 프랑크는 매혹적이며 때로는 전통적이지만 항상 선견지명이 있었다. 앙리 바라(Henry Barraud)는 그의 작품이 “조성 체계의 급속한 붕괴를 예고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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