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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소개

보스턴 출신 헨리 리 히긴슨이 고향에 위대한 상설 오케스트라를 세우고자 오랫동안 품어 온 꿈은 1881년 현실이 되었다. 그해 10월, 지휘자 게오르크 헨셸이 최초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BSO) 콘서트를 지휘했다. 약 20년 동안 BSO 콘서트는 올드 보스턴 뮤직 홀에서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콘서트홀 가운데 하나인 심포니 홀은 1900년 10월 15일 개관했다.

올드 보스턴 뮤직 홀에서 열린 첫 BSO 콘서트는 게오르크 헨셸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콘서트홀 가운데 하나인 심포니 홀은 1900년 10월 15일 개관했다. 헨셸의 음악감독 재임은 1884년에 끝났다. 그의 뒤를 이어 빌헬름 게리케, 아르투르 니키슈, 에밀 파우르, 막스 피들러, 그리고 1906~1908년과 1912~1918년 두 차례 음악감독을 맡은 카를 무크 등 독일 태생이거나 독일에서 교육받은 지휘자들이 차례로 음악감독에 올랐다. 1915년 오케스트라는 샌프란시스코로 첫 대륙횡단 순회공연을 떠나 파나마-태평양 박람회에서 13회의 콘서트를 열었다.

1918년 앙리 라보가 지휘자로 영입되었고, 1년 뒤 피에르 몽퇴가 그의 뒤를 이었다. 이러한 임명은 프랑스 중심 전통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 전통은 러시아 태생의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재임 중에도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많은 음악가들을 영입하며 이어졌다.

탁월한 음악성과 강렬한 개성으로 전설적인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1924년 전례 없는 25년의 음악감독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BSO는 정기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1936년에는 버크셔에서 첫 BSO 여름 콘서트를 개최했다. 오케스트라는 1937년 영구적인 여름 거처인 탱글우드로 옮겼다. 3년 뒤 히긴슨이 품었던 "음악가들을 위한 훌륭하고 정직한 학교"라는 꿈을 열정적으로 공유했던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버크셔 음악센터(현재의 탱글우드 음악센터)를 설립했다.

샤를 뮌슈는 1949년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뒤를 이었다. 그는 전임자의 현대 작곡가 후원 관행을 이어가면서 프랑스 레퍼토리의 수많은 음악을 미국에 소개했다. 그의 재임 기간에 BSO는 처음으로 해외 순회공연을 했고, 유스 콘서트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이어 1962년 에리히 라인스도르프가 음악감독직을 맡았다. 그는 수많은 초연을 선보이고, 잊히거나 등한시되었던 많은 작품을 레퍼토리에 복귀시켰으며, RCA 음반 녹음과 텔레비전 콘서트를 통해 BSO의 청중층을 계속 확장했다. 보스턴 심포니 체임버 플레이어스 또한 이 시기에 창단되었다. 윌리엄 스타인버그는 1969년 에리히 라인스도르프의 뒤를 이었다. 그는 다수의 미국 초연과 세계 초연을 지휘하고, 도이체 그라모폰과 RCA에서 음반을 녹음했으며, 정기적으로 텔레비전에 출연했고, 1971년 유럽 순회공연을 이끌었다.

이후 1973년 가을, 세이지 오자와가 BSO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28년 재임은 현재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음악감독 가운데 가장 긴 것이다. 세이지 오자와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BSO의 헌신을 재확인하며, 국내외에서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지난 25년 동안 교향악단은 BSO 창단 100주년을 위한 여러 작품, 탱글우드 음악센터 50주년을 기념하는 일련의 작품, 그리고 최근에는 존 코릴리아노, 탄둔, 앙리 뒤티외, 루카스 포스, 알렉산더 괴르, 존 하비슨, 한스 베르너 헨체, 피터 리버슨, 예후디 와이너, 엘런 타프 즈윌리치 등을 비롯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위촉했다. 그의 지휘 아래 BSO는 녹음 활동도 확대하여 필립스, 텔락, 소니 클래시컬/CBS 마스터웍스, 엔젤/EMI, 런던/데카, 에라토, 하이페리온, 뉴 월드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했다.

2004년 제임스 레바인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최초의 미국 태생 음악감독이 되었다. 제임스 레바인은 현대 작곡가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비롯해 재임 초기부터 연주의 질과 레퍼토리를 쇄신했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음악감독 취임 이후 보스턴 심포니는 18회의 세계 초연을 선보였으며, 그중 12회는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레바인의 더욱 도전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음악 프로젝트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는 약 4천만 미국 달러 규모의 "예술 이니셔티브 기금"을 조성했다. 이는 약 3억 미국 달러로 미국 오케스트라 가운데 최대 규모인 오케스트라의 기존 기금에 더해진 것이다.[6] 레바인의 현 음악감독 계약은 2012년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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